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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언어(옮긴 글)

공석환 2009. 9. 8. 08:39

밑의 내용은 다른 카페에서 퍼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뿌리를 살피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옮긴다.
 
 
뭐 다들 알다시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언어는 서로 통하지 않았다는게 최근 학설입니다. 여느 드라마나 학교 역사책을 보아도 같은 민족이라고만 서술했지 언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는 고대 신라어에서부터 시작하였고 고려, 조선을 이어서 현대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고구려어와 백제어는 어떤 것이었을까? 최근 연구되고 있는 학설에 의거하면 당시의 고구려어는 일본어와 일맥 상통하는 바가 많다고 전한다. 일부 서적과 유적에 남아있는 고구려어의 흔적이 고대 일본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고구려어는 우리의 어원이라고 알려지는 퉁구스어와 비슷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이에 일본어 또한 퉁구스계 언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백제어인데, 백제의 경우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간의 언어가 서로 달랐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이는 백제 지배계층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백제의 지배계층 언어는 고구려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백제에 거주하는 토착 민중은 이전에 존재하였던 마한어를 계속 사용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간의 융화가 어려웠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증거이다. 여기서 고구려어와 백제 지배계층 언어가 비슷하다고 하였는데, 고대 백제인들은 일본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으로 보아 고구려어, 백제 지배계층어, 고대 일본어는 거의 같은 언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백제의 경우 대부분의 민중이 사용하는 언어가 지배계층이 사용하는 언어와 달랐다는 사실로 고구려의 언어와는 다르다고 봐야 하는 견해가 옳다고 본다.

신라어의 경우, 진한어를 거쳐 신라어로 발전하였으며 고구려, 백제와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언어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삼국 통일로 인해 고려어로 발전하게 된다. 고대 신라어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향가인데 그것의 해독이 이렇다 할 방법론의 검토도 없이 중세한국어에 전적으로 의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었음은 신라어와 중세한국어의 본질적인 일치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물론, 삼국의 언어는 서로 친족간이다. 하지만, 민중들간의 언어의 소통은 서로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동일언어 사용 | 선생님 글방
전체공개 2004.09.17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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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 모두 동일언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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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 모두 동일언어 사용


-중국 역사책에 나오는 한민족 고대 나라들의 언어-


1. 고구려에 대한 기록


“ 동이족(= 배달민족 = 한민족)들이 서로 말하기를 고구려는 원래 부여인들이기 때문에 언어와 법이 많이 같다고 한다.”

(고조선이 말기에 나라이름을 '부여'로 바꿈.)

“고구려는 동이(한민족)의 옛말에 원래 부여인들이라 하는데 언어와 여러 일들이 부여와 더불어 많이 같다.”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 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 데가 있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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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 故言語法則多同.<후한서85-고구려>
東夷舊語以爲夫餘別種, 言語諸事, 多與夫餘同.<삼국지30-고구려>
言語諸事, 多與夫餘同, 其性氣衣服有異.<양서54-고구려>(「남사」에도 같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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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韓)에 대한 기록


(고조선은 3한 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3한은 마한 진한 변한)

“변한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변한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이 서로 비슷하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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弁辰與辰韓雜居, 城郭衣服皆同, 言語風俗有異.<후한서85-한>
弁辰與辰韓雜居, 亦有城郭. 衣服居處與辰韓同. 言語法俗相似.<삼국지30-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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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라,백제에 대한 기록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당시 백제인들이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제에는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신라보다 많았다고 보여짐.)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 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백제의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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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言待百濟而後通焉.<양서54-신라>(「남사」에도 같은 내용)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 行不張拱, 拜不申足則異.<양서54-백제>
言語服章略與高麗同.<남사79-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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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옥저에 대한 기록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그 언어는 고구려와 더불어 대부분 같고 때때로 약간 다르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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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후한서85-동옥저>
其言語與句麗大同, 時時小異.<삼국지30-옥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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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濊)에 대한 기록


“예(濊)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고구려와 같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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耆舊自謂與句驪同種, 言語法俗大抵相類.<후한서85-예>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삼국지30-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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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말갈, 읍루에 대한 기록


“읍루는 그 사람 생김새는 부여와 비슷한데,

언어는 부여, 고구려와 더불어 같지 않다.”

“읍루는 부여의 동북 천여리에 있다.

토지는 험준한 산이 많고 사람 생김새는 부여와 비슷한데,

언어는 각각 다르다.”

“물길국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는데

… 언어는 유독 (고구려와) 다르다.”

“물길국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는데 ‘말갈’이라고도 한다.

… 언어가 유독 (고구려와) 다르다.”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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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人形似夫餘, 言語不與夫餘句麗同. <삼국지30-읍루>
挹婁, 古肅愼之國也. 在夫餘東北千餘里, 東濱大海, 南與北沃沮接, 不知其北所極. 土地多山險. 人形似夫餘, 而言語各異. <후한서85-읍루>
勿吉國在高句麗北, 舊肅愼國也. … 言語獨異.<위서100-물길국>
勿吉國在高句麗北, 一曰靺鞨. … 言語獨異.<북사94-물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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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중국 역사책들을 보면 고조선,부여,고구려,옥저,진한,변한,신라,백제,예,맥 등의 언어가 같다고 나오고

물길(말갈),읍루(여진으로 추정)가 다르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역사책 기준으로 보면 한국어 ,투르크어,만주어는 지금부터 2500년이 넘는 훨씬 이전에 언어가 갈라졌다고 추정되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