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부친은 강원도 철원 미수복 지구가 고향인 실향민이다. 부친은 고향이 금강산 열차로 연결되는 곳이라서 어려서 수학여행 등으로 금강산을 5번 정도 다녀 오셨다고 한다. 고모 한 분이 아직 북한에 남아 계시는 데 생사도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부친은 고향은 다시 못 가 보시고 금강산여행은 다녀 오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4년전에 가족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철원 비무장 지역 탐방을 다녀 온 적이 있다. 구철원은 비무장 지대에 가까이 있어 꼭 유령의 도시와 같았다. 그 중 철원중학교 자리에 왔더니 부친이 한국전쟁이전에 그 곳에서 중학교 선생님으로서 교편을 잡으신 적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폐허였다.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월정리역에 와서 부친의 행동이 조금 이상해 보였다. 계속 역사 부근을 빙글 빙글 도시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휴전선 넘어 6Km만 가면 부친이 사시던 집이라고 한다. 그리고 철원에 나갈 일이 있으면 당시는 6km정도는 먼 거리라 생각하지 않고 걸어서 그 월정리역에 와서 기차를 타고 가셨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으로 생각하면 자기 고향집 앞의 버스정거장까지는 왔는데 자기 집을 못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부친이 그 자리를 계속 도시던 심정이 이해가 가고 눈물이 핑 돌았다. 나중에 부친에게 북한에 남은 고모님에 대한 상봉신청을 하셨는가 하고 물어 보았었다. 친구 한 분이 북한의 친척과 상봉을 하였는데 동생이 북한에서 의사인데 어렵다고 돈을 보내 달라고 계속 연락이 오는데 나중에 눈치가 동생이 필요하다기 보다는 정부에서 거의 송금액을 압수하는 것 같고 강요로 연락이 오는 것 같아 불편해 하다가 차라리 연락을 끊는 것이 서로 편하겠다고 생각하여 외국으로 이민을 간 경우가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처음에는 순서가 안 되어 상봉신청만 해 놓고 기다리다가 그러한 친구 이야기를 들으시고 상봉신청을 취소하셨다고 한다. 부친의 이산가족으로서의 고뇌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분단되어 전쟁도 하고 계속 대립하여 있는 것은 비극이다. 우리 민족이 한 때 힘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지금 현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부친도 여동생을 만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실 것이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 제사를 지낼 때 부친이 큰아버지와 이북의 고모가 살아 있으면 지금 나이가 어떻고 이북의 고모가 성품이 어떠하였는데 하고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여러 번 들은 적 있다. 그런데 상봉 후 북한 당국에게 무리한 송금 요구를 당할 것을 걱정하셔서 상봉신청도 못 하고 계신 것이다. 혹자는 북한을 깡패 동생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그 것을 부정할 일은 없다. 부친도 6.25전쟁 이전까지 이북에 계셔서 공산주의자 들의 행태를 잘 아신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는 현실로 받아 들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깡패국가이니 빨리 그러한 정권이 무너져야 된다고 태도를 취하고 대립의 각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아니하다. 반대로 북한과 우리나라가 한 민족인데 통일을 위해 무조건 베풀어야 된다는 입장도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나는 금강산 여행대가가 정권의 용돈으로 임의로 사용되는 것이 싫어서 금강산여행에 관심은 있어도 다녀 오지를 아니 하였다. 그러나 현대그룹에 오래 전에 계셔서 금강산 여행 시작한 초기에 금강산을 다녀 오신 분의 표현에 의하면 그 당시 북한의 사정이 밤에는 불 빛이 전혀 안 보일 정도로 안 좋았기 때문에 우리가 금강산 사업이나 다른 대북사업을 통해 지원을 하여 주지 않았을 경우 북한 정권이 자연적으로 붕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정권 초기에 우리나라도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북한정권이 무너져서 북한 거주 주민이 남한에 연고가 있는 사람이든 아니면 무조건이라도 밀려 내려 오면 우리나라가 감당할 수 있었는 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만약 북한정권이 붕괴되었다고 가정할 때에 우리는 북한이 우리 땅이라고 생각하지만 중국이 그 동안의 원조나 채권 등을 이유로 군대를 주둔시켜 점령하게 될 경우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대립으로 인한 지정학적인 리스크로 국가 신용도에 영향을 받는다. 화해 분위기일 때에는 그러한 리스크가 적게 평가 되고, 핵위기 등이 고조되면 그러한 리스크를 높이 생각하게 된다. 막연히 통일을 동경하는 사람도 많지만 현제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나 국제적인 분위기로 우리가 북한 정권이 붕괴되었을 때 감당하기 쉽지 아니하다는 현실을 인정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보다 경제력이 훨씬 나았던 서독 정부도 통일 후 약 20년 이상 경제나 사회통합에 후유증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북한 정권이 붕괴하지 아니하고 조금이라고 북한 주민들에게 덜 해가 되는 정부로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해야 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일 것이다. 북한의 소위 혁명1세대는 아직도 공산주의가 도덕적으로 우위이고 따라서 자신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우위를 가지기 위해 핵이나 강력한 무력을 보유해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평생 그러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살아 왔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김정일도 건강이 좋지 아니 하기 때문에 권력 승계의 조짐이 보인다. 큰 아들 김정남에 대한 견제가 심한 것은 내부적인 권력 투쟁도 있지만 김정남이 서양세계를 많이 보고 나서 그에 대한 동경으로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이 강하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누가 후계자가 되든 김정일 사후에 북한에 변화가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 것에 준비해야 될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로 우리나라는 북한을 통한 철도 및 도로 교통수단이 열릴 경우 동북아 비즈니스 및 운송 허브 역할을 하기가 더 쉬어 진다. 현실적으로 북한 정권을 인정하고 협조 받는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협력을 유도하기 위해 서로를 인정하고 같이 실질적인 형태로 경제 협력할 수 있는 연방제 형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면에서 단순히 집권층에게 현금을 주는 듯한 금강산 여행은 사실 없어져도 상관이 없지만 북한에게 자본시장의 교육을 해주는 개성공단 사업은 유지해야 되고 가능하면 더 확장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한다.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도 서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실용적인 협력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10년간의 정권이 북한과 우호 정책을 핀 것이 잘 못된 일은 아니지만 무조건 지원된 금액의 일부가 북한의 핵개발 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문제였다. 이제부터 개방화의 유도와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형태이면서도 북한의 현 정권을 자극하지 아니하는 형태로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될 것이다.
최근에 북한에 보내는 삐라에 북한 정권이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문제가 되는데, 변호사로서 삐라를 보내는 행위도 헌법에 보장된 표현행위로 국가가 직접적으로 규제를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삐라를 보내는 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한 걸음 진보를 위해 한 걸음 뒤로 후퇴한 다는 생각으로 당분간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북한 정권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것 보다는 다시 대화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대내적인 체재 유지를 위해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겉으로 내 세우는 정책보다 조용히 지원하고 조용히 대화를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될 것이다. 결론지면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층의 지지를 얻어 집권을 하였더라도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계속 예각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아니하고 대립관계를 겉으로 만들지 말고 실질적으로 서로 도움이 되는 협력 방안을 조용히 추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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