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낭만적으로 미화된 캐리비안 해적 블랙비어드

공석환 2011. 5. 29. 15:30

 

 

 

해적의 역사는 그리스 시대부터 많은 기록이 있다. 로마시대에 시저(카에사르)가 황제가 되기 전 청년시절에 해적들에게 잡혔다가 풀려나면서 몸 값을 지불한 적이 있다.

 

그런데 17-18세기 중남미 서인도제도에서 활동하던 소위 "캐리비안 해적"들의 생활이  실제보다 낭만화되어 많은 소설이나 영화에 계속하여  등장하고 있다. 위 사진들은 2009년 11월 캐나다 밴쿠버 교외의 애보츠포드에서 할로윈 장식을 한 것을 찍은 것으로  위 사진은 플래시를 터트리지 아니하고 찍은 것이고 아래는 같은 곳을 플래시를 사용하여 촬영한 사진으로 캐리비안 해적을 형상화한 것이다.

 

 

출처 BBC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연안에서  해적 블랙비어드의 해적선 ‘앤 여왕의 복수(Queen Anne’s Revenge)’ 의 것으로 보이는 대형 닻이 2011년 5월27일(현지시각) 발견됐다. 무게가 1톤이 넘는 거대한 것이었다.



File:Edward Teach Commonly Call'd Black Beard (bw).jpg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Edward_Teach_Commonly_Call%27d_Black_Beard_(bw).jpg

 

블랙비어드는 1716년부터 1718년 사이 미국 남동부 연안을 지나가는 배들을 약탈한 악명 높은 해적이다. 그의 본명이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아니하다. 해적에 합류할 때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지 아니하기 위해  본명을 숨기는 것이 당시 관습이었기 때문이다.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특징있는 검고 긴 수염으로 그는 "블랙비어드(검은수염)"으로 불리우게 된 것이다.

 

블랙비어드는 1690년경 영국에서 태어나서 선원으로서 서인도제도의 자마이카 부근에서  "사략선(privateer)"에 참가한다. 사략선이란 정식으로 국가의 해군이 아니면서도 전시에 적국의 배를 공격하고 그 물건을 탈취할 수 있는 면허장을 국왕으로부터 받은 배를 의미한다.

 

 

File:Pirate Flag of Blackbeard (Edward Teach).svg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Pirate_Flag_of_Blackbeard_(Edward_Teach).svg

 

블랙비어드는 사략선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적에 가담하여 자신의 부하와 배를 늘려 가면서 악명을 높여 갔다.  낮에 상대방 배의 국적을 확인하여 그 배의 국적과 같은 기를 배에 게양하여 안심시키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밤이나 새벽에 가까이 접근한 후 기습하면서   위 그림에 보이는 해적기를 내 걸면서 상대방 배를 공포에 빠뜨려 항복하도록 유도하였다고 한다.

 

 

File:Blackbeard's head.jpg

http://en.wikipedia.org/wiki/File:Blackbeard%27s_head.jpg

 

블랙비어드는 1718년 5월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챨스턴 항구를 봉쇄하고 그 지역의 유지들이 탄 배를 납치하고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약품 등을 요구한 사건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결국 이러한 사건의 여파로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인 알랙산더 스포트우드는 영국 해군 2척을 블랙비어드의 본거지인 오크라코크만에 보내서 기습하게 하였다. 영국해군의 메이나드 대위는 블랙비어드와 직접 마주쳐서 근접전을 벌인 결과 블랙비어드를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배의 돗대에 위 사진과 같이 매달아 다른 해적들의 항복을 유도하게 하였다.

 

 

돌이켜 보면 블랙비어드와 같은 해적이 생겨난 것에는 영국이 스페인이나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이용하기 위하여 비정규군인 사략선을 허용하여 해적활동을 할 경험을 키우게 된 것도 큰 원인이다. 해적들은 약탈물의 분배에 관하여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기 보다는  가능하면 겁을 주어 상대방의 항복을 유도하려고 하였다. 다만 귀중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빼았기지 아니하려고 저항한 여성의 반지를 낀 손가락을 잘랐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해적들의 생활을 미화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현실과 다르다. 그들은 해상치안이 불안한 가운데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도둑에 지나지 아니한 것이다. 다만 그들이 본거지에서 잡히지 아니하고 생존한 것에는 그들이 약탈한 밀가루 등의 생필품을 주위에 시가보다 싸게 팔아서 주변 사람들의 동조를 얻은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 소말리아 연안에서 일어나는 해적활동도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소말리아 연안에 다른 국가들이 오염물을 투기하거나 무단 어업활동을 하는 것으로 해적활동을 합리화할 수 없다. 소말리아  해적활동은 물주가 따로 있고 그 조직형태가  기업화되고 있다.

 

 생포된 소말리아 해적들을 국내에 압송하여 재판을 한 결과 부산지법에서 2011년 5월 27일 무기형 등 엄중한 징역형을 선고한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추후 보복가능성을 높였다는 점과 재판 및 향후 수감비용이 막대하게 든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러나 해적들에 대해 적법절차를 거쳐 법집행을 보여준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그들에 대한 장기적인 수감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에서 1,2년정도 수형생활후 감형을 하여 소말리아로 추방할 것을 예상한다.

 

정리하면 블랙비어드와 같은 과거 유명한 캐리비안 해적에 대해 미화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과거 "친구"와 같은 국내 영화가 조폭들을 일부 미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잘 못되었다고 본다. 다만 그들이 활동하게 된 배경에는  각국이 전쟁시에 예비군과 같은 형태로 동원할 목적으로 사략선이라는 준민병을 양성한 것에도 책임이 있다. 향후에도 해적활동을 막기 위하여 국제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그리고  소말리아와 같은 해적들의 본거지의 환경을 개선하여 해적들이 생겨나는 근본원인을 치유하는 노력도 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