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시론] '자명종 대통령'이 위대한 대통령이다
- ▲ 김인규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국민이 유혹에 빠져들 때 누가 자명종 역할을 할 것인가?
바로 대통령이다
그는 재임 때는 인기가 없다
아침에 알람(alarm·자명종)시계가 울린다. 합리적인 사람은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알람을 끄고 다시 단잠에 빠져든다. 당신은 어떤 타입인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대개는 일어나겠지만 가끔은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 때도 있을 테니까.
전통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알람의 예에서 보듯 대체로 합리적이지만 때론 비합리적이기도 한 모순덩어리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사람들의 이런 '제한적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인센티브에 관한 연구를 하는 경제학의 새로운 분야다.
미국 시카고대의 리처드 탈러(Thaler) 교수와 캐스 선스타인(Sunstein) 교수가 쓴 '넛지(Nudge)'는 일반인을 위해 쉽게 풀어쓴 행동경제학 책이다. 이 책에서 두 저자는 사람의 '제한적 합리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콘(econ)'과 '휴먼(human)'이라는 두 자아를 등장시킨다.
'이콘'은 전통 경제학이 가정하는 '냉철하게 자신의 이익을 계산할 줄 아는 합리적 존재'이자 계획하는 자아를 말한다. 이에 비해 '휴먼'은 유혹이나 선동에 쉽게 넘어가는 현실 속의 비합리적 존재이자 행동하는 자아다.
다시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회사원의 예로 돌아가 보자. 그의 계획하는 자아인 '이콘'은 자기 전에 알람을 맞추도록 만든다. 그러나 막상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행동하는 자아인 '휴먼'은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도록 만든다. 이때부터 '이콘'과 '휴먼'의 대결이 시작된다. 만약 '휴먼'이 '이콘'을 이기게 되면 그는 나중에 회사 지각 때문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런 후회를 막으려면 '이콘'이 '휴먼'을 이길 수 있도록 배우자나 부모님과 같은 외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가 혼자 산다면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 최근 미국에서 출시된 '클라키(Clocky)'라는 알람 시계가 그런 장치다. 클라키는 알람 시작과 동시에 스스로 온 방 안을 굴러다닌다. 시끄러운 클라키를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한다. 클라키가 '이콘'으로 하여금 '휴먼'을 누르도록 만든 것이다.
'이콘'과 '휴먼'의 갈등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국민의 '이콘' 성향이 발현될 때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국가 정체성 등 대한민국의 중심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서로 양보하고 현재의 고통을 감내해낸다. 반면에 '휴먼' 성향이 발현되면 포퓰리즘(populism·대중 영합주의)이라는 현재의 달콤함에 안주하게 된다. 그 결과 나중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우리 국민이 '휴먼'의 유혹에 빠져들 때 누가 궁극적으로 클라키의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지도자는 하나같이 자명종 역할에 충실했던 '클라키형' 인물들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바로 국민의 '이콘' 성향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클라키형 지도자는 재임 당시에는 인기를 얻기 힘들다. 오죽했으면 박 대통령이 우리 국민의 '휴먼' 성향을 억누르기 위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단호한 결기로 클라키 역할을 수행했겠는가. 클라키형 지도자가 인기가 없다 보니 많은 지도자들은 자명종 역할을 포기하고 오히려 국민의 '휴먼' 성향을 부추기고 인기에 영합하려 든다.
그러나 클라키형 지도자가 아닐지라도 재임 중 인기가 낮을 수 있다. 그 경우는 "군주는 결단력이 없을 때 조롱당한다"는 마키아벨리의 명언처럼 지도자가 우유부단하거나 무능할 때다. 작년 6월의 '촛불 시위'는 우리 국민의 '휴먼' 성향이 폭발했던 대표적 사건이었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이 우유부단했기에 여론 지지도가 20%대로 떨어졌던 것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여름휴가 때 청와대 참모들에게 '넛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하지만 참모들 중 그 누구도 이 책의 핵심 함의(含意)가 클라키형 리더십에 관한 것임을 대통령에게 말씀드리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공기업 민영화, 연금개혁, 공무원노조 문제와 같은 주요 국정 어젠다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4대강 살리기 사업,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 보금자리 주택사업 등 정부의 재정파탄을 초래할 정책들과 미소금융과 같은 포퓰리즘 정책들만 하루가 멀다고 발표되겠는가.
최근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위험한 신호다. 이 대통령이 클라키형 리더십을 포기하고 국민의 '휴먼' 성향에 영합하려는 것 같아 매우 염려스럽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아부를 하지 않으면서도 독단이 아닌 국민의 공감을 얻는 정치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MB가 꼭 읽어 볼만한 내용이 담은 글이라고 생각하여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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