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현재 서부 경남, 특히 거창의 가뭄이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뭄은 1973년 거창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두 번째로 심한 가뭄이다. 가장 심한 가뭄은 지난 1978년에 있었다. 올해의 가뭄은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에 이번 가뭄이 가장 극심한 가뭄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강원도 태백시에서는 관공서의 수세식 변기 사용이 중단되는가 하면, 市長(시장)이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에 물을 보내 달라는 호소문을 보낼 정도다.
이런 가뭄이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가을장마가 실종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降水帶(강수대)가 東西(동서)로 길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동서로 대륙과 해양을 관통하는 선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아시아대륙의 연안을 따라 南西(남서)-北東(북동)으로 기울어진 선상에 나타난다.
이 강수대는 장마철에 우리나라를 지나 북상할 때 가장 크게 활성화되면서 장마를 초래하므로 ‘장마전선’이라고 불린다. 이 전선은 장마철 이후에는 북상했다가 여름이 끝나가는 8월 말에 다시 내려온다. 이 전선이 다시 우리나라를 지날 때가 바로 가을장마 시기다.
그런데 작년에는 이 가을장마가 내려오는 흔적도 없이 어느 사이엔가 제주도 남쪽까지 내려가 버렸다. 여름부터 가을장마까지 댐에 채워진 물로 1년을 사는 것이 우리나라의 물 살림인데, 작년에는 가을장마의 실종으로 물을 채우지 못했다. 이것이 올 겨울의 가뭄으로 이어졌다. 이 가뭄은 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사예보법(과거에 발생했던 유사한 사례를 찾아 그와 유사하게 진행하리라고 예측하는 방법)으로 이번 가뭄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예측해 보면, 겨울에 남부지방만 심하게 가물었다는 것을 예보因子(인자)로 삼았을 때 유사 사례로 1995년과 1777년을 꼽을 수 있다. 두 해 모두 장마 때 잠시 解渴(해갈)됐다가 다시 가물어 이듬해 장마철까지 갔다. 이에 비추어보면 올해의 가뭄도 쉽게 물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2월 초 현재 제한급수 이상의 고통을 받는 인원이 10만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나왔지만, 제한급수 지역의 분포가 지도로 표시되지는 않았다. 본래 수도를 사용하지 않는 인구도 많은데 그들은 통계에서 제외한 모양이다. 왜 제한급수가 발생했는지 분석하는 보도도 발견되지 않는다. 아직 가뭄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적다는 증거다.
極大가뭄이 닥쳐온다
문제는 이번 가뭄이 1회성 가뭄이 아니라는 데 있다. 앞으로 한반도에 주기적인 큰 가뭄이 줄줄이 닥쳐올 것이라는 연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月刊朝鮮 2008년 10월호 ‘2012년부터 한반도에 최악의 가뭄 시작된다’참조).
한반도에서는 124년 주기로 極大(극대)가뭄이 6번 있었는데, 이에 의하면 2025년을 중심으로 극대가뭄이 있을 것이고, 그 시작은 2010년이나 2012년쯤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 38년 주기의 큰 가뭄이 두 개의 波(파)로 다가오고 있는데 그 중심이 2015년과 2020년이고, 그 시작은 2012년쯤이 될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2012년부터 두 개의 파가 겹치니 더욱 우려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앞으로 20여 년 동안 계속 가뭄문제가 심각할 것이라는 얘기다.
1940년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는 약 60년 동안 심각한 가뭄을 겪지 않았다. 38년 주기의 가뭄이 한번(1976~1978년) 지나갔지만, 다행히 수도권을 피해 간 덕분에 피해가 크지는 않았다.
그 행운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됐다. 가뭄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 가뭄도 수도권을 피해서 발생하고 있다. 경남과 전남에서 아무리 가뭄의 피해를 호소해도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몰려 사는 수도권에서는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
38년 주기로 찾아오는 가뭄이었던 1939년의 혹독한 가뭄을 기억하는 세대는 그리 많지 않다. 124년 주기로 찾아오는 극심한 가뭄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1882년에 시작돼 1910년에 끝난 極大(극대)가뭄의 중심연도였던 1901년의 年(연) 강수량은 373.6mm 에 불과했다. 이 가뭄 기간 민생은 도탄에 빠졌고, 나라살림은 가난해졌으며, 정치·사회적 혼란이 거듭됐다. 그 가뭄의 마지막 해인 1910년에 대한제국이 멸망했다.
이렇게 가뭄의 심각성에 대해 설명해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직접적인 피해 이외에도 가뭄으로 인한 각종 피해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다. 지난 2월 9일 발생해 6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창원 화왕산 산불이 그렇게 크게 번진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오랫동안 계속된 겨울 가뭄이었다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도 우려된다. 중국과 아르헨티나는 이번 가뭄으로 밀 농사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2월 현재 국제 곡물가격이 이미 소폭 상승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른다. 가뭄으로 국내 농작물의 작황이 나빠질 가능성도 크다.
각국의 가뭄대책
극심한 겨울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강원도 태백시에서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들이 주민들에게 급수차를 동원해 물을 공급하고 있다. |
중국에서는 이번 가뭄이 발생하자 당초 2급 가뭄경보를 발령했다가 올 2월 5일 1급 가뭄경보로 바꾸면서 “가뭄대책이 다른 모든 행정에 우선한다”고 공포했다. 중국 일각에서는 天災(천재)가 아니고 人災(인재)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선 중국의 수자원 이용률이 45%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베이징(北京)의 경우 지난 여름과 가을 동안 평년과 비슷한 비가 왔지만 물 부족이 심각해진 것은, 원래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던 베이징 시민들이 작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외국인들이 물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덩달아 물을 과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올림픽 때 실시한 인공강우의 후유증으로 베이징이 주변 지역보다 비가 적어졌다는 추측이 한때 있었지만 증명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수자원 이용률은 55% 미만이다. 선진국의 수자원 이용률은 70%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淚水(누수)의 원인으로 수도관의 老朽(노후)가 지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관의 노후보다 水路(수로)·水管(수관)의 관리소홀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과는 달리 노후 수도관은 정부에서 즉시 교체해 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가뭄대책은 누수량을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灌漑(관개)시설 전체와 배수로·배수관 전체에 대해 구간마다 책임 공무원을 정하고, 담당공무원으로 하여금 일일이 점검하게 해야 한다. 누수구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담당자는 重(중)징계해서 一罰百戒(일벌백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누수율 줄이라고 공문을 내려 보내면, 누수율이 줄었다는 공문만 올라가기 마련이다.
미국에서는 州(주)별로 가뭄에 대한 상세한 대응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가뭄피해가 발생할 기미가 보이면 대책위원회가 매주 정례적인 모임을 열어 가뭄대책 프로그램을 발동할 것인지 여부를 논의한다. 이 위원회는 매년 가뭄대책 프로그램에서 더 수정 보완해야 할 요소는 없는지를 점검해 보고한다.
호주도 가뭄정책에서는 선진국이다. 호주 정부는 가뭄의 발전상황을 상세하게 보도해 국민들의 대응을 돕는다. 하지만 가뭄피해가 생겨도 정부가 이를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
가뭄경보가 없다
우리나라의 가뭄대비 태세는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가뭄경보가 없다. 그래서 체계적인 대응을 할 근거가 희박하다. 가뭄이 발생하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알아서 대처한다. 누구도 ‘언제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간섭하지 않으니 지자체로서는 편하지만, 국민으로서는 불안한 것이다. 소방방재청이나 기상청도 가뭄에 대비해 하는 것이 없다.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정부 예산을 끌어다가 쏟아붓는 것으로 자기가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 각 지자체는 그런 일을 잘하는 사람을 기관장으로 선호한다. 그래서 재해가 발생하면 이에 대한 상황판단이나 피해경감 등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예산 받아오기에 더 혈안이 된다. 심지어 재해지역으로 선포되어 보상을 받기 위해 재해를 일부러 더 키운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이번에 정부는 가뭄에 관정 보수 및 재개발을 위한 예산을 준비하는 발 빠른 행보를 보여줬다. 하지만 국민적 물 절약 캠페인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았다. 이미 수위가 바닥에 가까워진 댐들이 수두룩하다. 이 상태로 장마철까지 버티기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지만, 국가적 대책은 없이 쉬쉬하고만 있는 느낌이다.
둘째, 국민과 정부가 가뭄에 대해 이렇게 무감각하게 된 데에는 기상청의 책임도 있다. 기상청에서 가뭄에 관심이 없다면 민간에서라도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이를 못하게 법으로 금지해 놓고 있었다.
최근 신임 기상청장이 예보권을 민간에 개방하겠다는 말을 했으나 큰 기대는 할 수 없다. 비가 오고 말고 정도의 예보는 민간 사업자가 할 수 있게 하되, 재해에 관한 예보는 기상청에서 여전히 독점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방 시기가 빠르면 22개월 후라 했으니, 결국 자기 임기 중에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10년 가뭄에 견딜 수 있는 초대형 댐 만들어야
가뭄대책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인공강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民官(민관)차원에서 인공강우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5년 가뭄 때 총리가 직접 인공강우를 지시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공강우 실험이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기상청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인공강우 실험이 민간에서 한 번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인공강우가 성행하는 미국이나 중국에는 이런 법이 없다. 대한민국의 관료주의가 여전함을 보여주는 실례다.
둘째, 南北(남북)수로를 연결할 필요가 있다. 현재 북한강 지역은 물이 남지만, 그 외의 지역은 물이 모자라는 상태이다. 북한강의 물을 전국으로 보낼 수 있는 수로를 건설하면 가뭄 피해를 경감하는 데 효과가 클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가뭄을 겪은 적이 없었다. 어느 한 지방에 가뭄이 들면, 반대쪽은 가뭄이 아니었다. 한쪽에서는 가물고, 다른 한쪽에서 홍수가 난 적도 있었고, 가뭄 뒤에 바로 홍수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대규모 수로는 이러한 재해에 대한 대응력을 크게 높여 준다.
남북한의 강물을 잇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북한은 지금 물이 남아도는 상태다. 올 가뭄 해소에는 북한의 물을 이용하고, 나중에 북한이 가물면 남쪽에서 물을 보내 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장기적으로 최소한 10년간 가물어도 버틸 수 있는 초대형 댐을 건설하고, 이 댐에서 전국으로 수로를 연결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의 싼샤댐(400억t), 북한의 임남댐(26억t)에 필적할 만한 큰 댐이 소양강댐(29억t)외에는 없다.
넷째, 수자원 확보를 위한 각종 연구를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海水(해수) 淡水化(담수화) 연구, 공기 중의 수증기의 결빙을 촉진하여 수자원을 증가시키는 연구, 물의 증발을 억제하여 수자원을 보호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 水溫(수온) 상승으로 水質(수질)이 악화되어 아까운 물을 버리게 되는 일이 없도록 藻類(조류)번식을 억제하는 연구도 필요하다.
다섯째, 물 절약을 유도하고,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잔디밭·목욕탕·수영장·수세식 화장실 등의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수돗물 값을 올리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대규모 아파트단지마다 管井(관정)을 하나 이상 마련해 비상시에 대비해야 한다. 농업 분야에서는 가뭄에 대비한 대체작물 선정, 농작물 파종시기 등에 대한 연구와 대책이 필요하다. 관정의 개발과 관리를 관장하는 정부 부서를 만들고, 가뭄연구센터를 설립해 가뭄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