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위키미디아 공용 2007년 세계제작자 회의에서
스티브 잡스가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전세계는 그가 IT업계에 남긴 독보적인 업적을 기리면서 슬픔을 표시하고 있다. 반면 하드웨어에 치우친 불균형적인 대한민국의 경우 향후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과 스마트 폰 등의 분야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살아온 흔적을 보면 한마디로 그는 계속적으로 도전을 찾는 "반항아"였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활동하였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어 보면 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그는 시리아 이민자 출신의 생부와 독일계 미국인 생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생모의 아버지가 그의 친부모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그는 입양되어 양부모의 손에 키워진다. 그는 어려서부터 말썽꾸러기로 제 멋대로 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다만 어려서부터 전기전자와 관련한 공작제품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그러한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오레곤주의 리드 칼리지에 입학하였으나 학비 부담에 한 학기만 마치고 중퇴를 한 후 청강을 일부 더 하였다고 한다. 그 때 청강으로 마친 서체학(Caligraphy)이 향후 맥킨토시 컴퓨터에서 다양한 자체를 제공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게임회사인 아타리 회사에서 짧은 시간 일을 한 후 그는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인도에 종교적 수행을 다녀 온다.
그가 가까운 동네 전자 취미 모임에서 어울리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손을 잡은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애플이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천재적인 기술을 제공한 것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스티브 워즈니악이었다. 다만 그는 그러한 사업을 같이 추진하고 마키팅에 나선 것이다. 비슷한 시기인 1980년대 초반에 IBM에서도 개인용 컴퓨터(PC)를 발매하기 시작하였으나 애플이 제작한 맥킨토시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끈 것은 화면에서 마우스를 이용하여 메뉴를 다루는 "Graphic User Interface(GUI)"기술을 먼저 채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 GUI기술을 개발한 것이 아니다. 제록스 연구소에서 개발한 GUI기술의 시연을 보고나서 그 것의 유용성을 빨리 파악하여 실제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PC에 도입한 것이다.
그는 엄밀히 이야기 하여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전문가라고 할 수가 없다. 산업 전반계의 동향이나 소비자의 욕구를 먼저 파악하는 천재성은 가지지만 실제 제품의 개발은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한 것이다. 그는 개별 악기를 잘 연주하지 못하면서도 각 악기의 연주자들을 조율하여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내는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그가 성공만을 한 것은 아니다. 업무용 컴퓨터인 "리사"등이 무리한 가격으로 시장에서 제대로 받아 들여지지 아니하고 맥킨토시 컴퓨터 기술을 다른 회사들과 공유하지 아니하고 독점하다가 일반 PC분야에서 점유율이 떨어지는 위기를 맞은 것이다. "평생 설탕물만 팔 것인가 아니면 같이 세상을 바꿀 것인가"하는 말로 설득하여 펩시에서 일한던 스컬리를 대표이사로 영입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러나 그의 독단적인 행동으로 오히려 스컬리에 의해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축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하였다.
그는 루카스 감독이 이끌던 3D 소프트웨어 팀을 인수하여 디즈니와 협력하여 "토이스토리" 등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성공하고 나서 다시 애플에 복귀하여 아이맥이라는 본체와 모니터가 하나로 된 컴퓨터로 일부 성공을 하여 애플사를 다시 재기시켰다.
그런데 그가 애플을 다시 IT업계를 선도하는 회사로 만든 것은 MP3 뮤직을 연주하는 IPod를 히트치고 나서이다. 그런데 MP3기술은 대한민국에서 먼저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Itune이라는 형태로 부담스럽지 아니한 가격에 유료로 음원을 편리하게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하여 성공한 것이다.
스마트폰을 일상용도로 변화시킨 아이폰은 소프트웨어를 앺이라는 형태로 추가 구매하는 것을 활성화한데 특징이 있지만 그 기본적인 특성인 인터넷과 자유롭게 연결하는 휴대폰은 오히려 캐나다 리서치 인 모션사의 블랙베리에서 시작하였다. 아이탭도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많이 수정되어 세련되었지만 그러한 탭은 Palm사 등에서 판매되어 이미 알려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정리하여 보자. 스티브 잡스는 IT 분야에서 정규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하드웨어 엔지니어나 소프트 엔지니어로 불리울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마키팅이나 경영을 정식으로 교육과정을 받은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독서광으로 책을 많이 읽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수요자나 업계의 최근 기술진보를 받아 들인 사람이다. 그리고 그래픽유저 인터페이스 등 그가 실제 응용한 기술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발명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대학 중퇴자이고 어느 분야에 전문가라 할 수 없는 사람이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고 소비자에 맞게 제품을 만들도록 지휘하는 총괄역할을 할 수 있었을가?
스티브 잡스의 사망 이후 대한민국의 IT업계가 안도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교주와 같은 카리스마는 사라졌어도 그가 애플내에서 이루어 놓은 체계는 최소한 수년은 더 지속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IT, 자동차 업계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자고 그러면 비록 어느 한 분야에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비젼을 가지고 소비자의 섬세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능력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교육과정에서 석차에 치중하고 서열구조를 중시하는 사회시스템에서 그러한 사람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을 하여 볼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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