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견

2005년 콩고 방문

공석환 2009. 2. 23. 11:30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구명칭 '자이레')에 간 것은  벤처사업하고 관련이 된다.  한국 벤처기업이 콩고에서 전화통신사업을 한다고 콩고코리아텔레콤 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활동 중이었다. 아는 사람이 그 회사를 나에게 소개하여 주면서 콩고가 자원부국이므로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05년 5월경에 콩고민주공화국의 죠셉 카발라 대통령이 방한을 하여 롯데 호텔에서 리셉션을 하는데 참석을 해 보았다. 그랬더니 옆에 앉은 사람들도 같은 인상을 받았는데 카발라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 젊은 시절을 연상시켰다.  30대 중반에 자기 아버지가 대통령을 하다가 암살을 당한 후 추대를 받아 대통령을 하게 되었다고 그러는데 북경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그러고 머리가 짧고 연설하는 것도 패기가 있어 보였다.  카빌라 대통령 방한 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답방을 할 입장이 아니라서 그 대신 대한 상공회의소에서 경제사절단을 보내는데 참여하여 콩고에 다녀 오게 된 것이다. 

 

2000년 경에 벤처 컨퍼런스에 중국이나 인도사람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그러한 나라들의 경제발전이 진행되면서 자원부족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을 들은 적이 있었다.  따라서 자원 문제에 대해 미리 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을 조사하여 보았더니 아프리카에서 수단 다음으로 넓은 나라로 남북한 합친 면적의 10배가 넘는 나라로 구리 다이아몬드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다고 되었다.  그런데 특히 눈에 띈 것이 수력자원이었다.  기후 온난화에 따르는 탄산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헤이그 협정 등의 영향으로 수력자원의 개발은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콩고민주공화국을 관통하여 지나는 콩고강은 유량기준으로 전세계에서 아마존강 다음이었다. 그런데 수력발전의 에너지 용량은 유량에 낙차를 곱한 것이 된다.  아마존강은 비교적 평평한 곳을 흘러 낙차를 얻기 어려운데 콩고에는 하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갑자기 경사를 이루어 급류를 이루는 곳이 있어 그 지역을 잉가라고 부른다.  그 곳에 댐을 막아 물을 돌리면  200여 미터의 낙차를 얻을 수 있고 그러한 것을 다 이용하여 발전소를 가동하면 발전용량이 지금 세계최대 수력발전소인 중국 삼협댐의 2배 그리고 우리나라 현재 총 발전용량의 2/3에 달하는 대단한 용량이었다.   추가로 조사를 해 보았더니 유럽에 유수한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위 잉가에 대해 상세한 보고서를 준비해 놓았다.  다만 현재는 총 발전 가능 용량의 1/20도 안되는 소규모 댐이 20년전에 건설되어 가동되어  수도와 그 부근의 광산에 송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회사들이 잉가 지역의 발전 용량을 총 가동하여 그랜드 잉가 댐을 만들 경우 그 생산된 전력을 아프리카에서 소비를 하기 어려우니 유럽으로 송전을 하는 것으로 사업계획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계획에 따르면 송전비용이 댐이나 발전소 건설 비용을 능가할 뿐 아니라 송전선이 아프리카 여러 국가를 지나야 되기 때문에 정치적 리스크 때문에 실현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그랜드 잉가를 건설한 후 70%의 전기는 액화수소공장 가동에 사용하고 건설 및 운용에 대한 투자 자금 회수를 위해 생산된 액화수소를 수출하고 나머지 30%는 콩고민주공화국 내에서 내수 및 광산 제련시설 확충 용도에 사용하는 것이었다. 만약 거기에서 생산된 액화수소를 국내에 반입하여 화석연료 대신 에너지 원으로 사용할 경우 최근 문제되는 기후 협약과 관련하여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으로 하여 추가적인 혜택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댐을 지을 동안 건설사업도 하고 향후 댐 및 액화수소 공장 완성 후 액화수소 확보와 반입 그리고 콩고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가지면서 풍부한 콩고의 지하자원에 대한 확보 등 여러가지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내용을 한국경제신문에 의견으로 기고한   후 2005년 10월에 대한상공회의소 주관으로 공식 민관사절단 자격으로 현지에 한전과 수자원공사 실무자와 같이 가게 되었다. 

 

콩고까지 가는 데 비행기 시간만 20시간이 넘었다.  홍콩에서 비행기를 갈아 타서 남아공화국에 도착한 후 다시 비행기를 갈아 타고 북쪽으로 향하여 아프리카 적도 아래 있는 콩고 민주공화국 수도 킨샤사 공항에 도착했다.  남아공화국에서 콩고로 가는 비행기가 그리 높이 날지 아니하기에 공중에서 아프리카의 모습을 흐리게 나마 볼 수 있었다.  킨샤사 공항에 도착하였더니 이거 수도의 공항이 아니라 시골 동네 공항 같았다.  지나가는 길의 모습을 보니 진짜 우리나라 60년대 초의 모습도 안 되었다. 그런데 국회의사당, 공설운동장을 지나면서 그러한 공공건물을 중국이 무료로 지원하여 건설해 주었다는 것에 역시 우리가 한 발 늦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지에서 하는 도로건설 공사에 중국회사가 자기나라 인력을 데리고 와서 하는데 우리나라 업체는 경쟁을 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에 머물렀더니 호텔의 시설은 괜찮았다.  첫날 교민과 대사관 관계자들과 현황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한 아프리카 오지에도 사업을 하겠다고 계신 교민들이 있다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니 그 곳이 물가가 싸서 적은 자본으로도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기회를 가지고 모험정신으로 오신 분들도 있고, 일부 구리 광산 등 광업에 목적을 가지고 주재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다음 날 우리는 콩고 전력회사와 미팅을 가졌다.  콩고 전력회사의 사장 부사장 및 가장 중요한 중역들이 다 모여 있었다.  위에 이야기 한대로 그랜드 잉가댐을 건설하여 30%는 콩고에 주고 70%는 한국 공단을 만들어 그 전기를 사용하겠다고 하였으나  보안상 목적으로 그 70%의 대부분의 전기를 액화수소공장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만약에 한국에서 주도하여 그랜드 잉가 댐만 지어 주겠다고 그러면 그 부근에 가장 좋은 자리를 한국 공단 자리로 확보해 주겠다고 그러면서 잉가 부근에 지금 알루미늄 광산 개발 계획이 있는 데 추가로 전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덧 붙였다.  알고 보니 콩고 전력회사가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콩고에서 가장 엘리트로서 정부 정책결정에도 힘이 있었던 것이다.


 

 

 한전 수자원공사 실무자 들과 나는 단순히 주어지는 자료만을 보고 판단할 수 없으니 현장을 답사하기로 하였다. 비행기로 가면 한시간이면 가는 거리지만 대사관에서 콩고의 국내에서 운행되는 비행기들이 정비가 불량해서 위험하다고 하여 7시간에 거쳐 차로 가기로 하였다.  물론 당일로 갔다 올수는 없어 아침 일찍 떠나 현장을 보고 일박을 하고 돌아 오는 것이었다.  콩고 대통령 직속 차량에 콩고 외교부 공무원 2명이 같이 동행을 하였다.  그 현장이 콩고에서는 통제구역이기 때문에 그러한 공무원들이 대동해야만 출입할 수가 있었다.  가는 길에 아프리카의 현장을 볼 수 가 있었는데 수도 킨샤사부터 댐까지는 열대 우림지역은 아니고 비가 적은 사바나 지역에 가까워서 동물이 별로 안 보였다.  물어 보았더니 내전으로 동물들이 국립공원이나 밀림 지역에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 넓은 땅을 지나다 보니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우리나라도 이러한 식민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한다.  그러나 이제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지배할 시절은 지났으니 서로 협력할 방안을 찾아 밀적한 관계를 만드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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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가댐을 가는 길에 콩고에서 교통 수단이 모자라서 사람들이 트럭의 위와 옆에 매달려 가는 모습을 차 안에서 찍음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이 것은 별천지였다 엄청난 양의 물이 급경사로 급류를 이루며 내려 오고 있는데 눈으로 보더라도 그 물량이 세계에서 아마존 다음 가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저명한  엔지니어링회사가 그랜드 잉가 댐 후보지로 지목한 곳을 답사해 보고 수자원공사 실무자가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기를 이정도면 실제 댐을 건설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덧 붙였다. 또한 유리한 조건이 댐 건설후보지역 10km 이내에 강이지만 바다에서 연결되는 내항이 있는데 콩고강의 수량이 원래 많기 때문에 그 내항에 5000톤 급의 중형선박이 여러 척 기항되어 있었다.  우리의 눈에 내항이 아니라 바다의 항구처럼 보였다. 따라서 댐 건설에 필요한 물자를 바다를 통해서 직접 옮길 수도 있었다.  그날 저녁 그 부근의 호텔에 머물렀다 저녁 식사로 비프 스테이크를 주문하였다가 질겨서 다 먹을 수가 없었다. 그냥 방목된 소라서 그렇단다.  후진국에서는 돼지고기나 생선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다음 날 킨샤사로 돌아 오는 길에 콩고를 지배했던 벨기에 인들이 아직 운영하는 시멘트 공장에 들렸었다. 이미 지어진  댐을 건설할 때 쓰여진 시멘트를 생산한 곳이란다. 수영장도 사옥 내에 있고 평화로운 부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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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에 건설된 잉가댐 모습, 뒤에 콩고 강이 보이는데 실제 보면 엄청난 수량과 급류로 흐름



 
 

여기가 유럽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그랜드 잉가댐의 후보지로 지적한 곳으로 우리가 방문해 본 결과 주위의 환경으로는 댐을 건설하는 데에 큰 장애 요소가 없었다. 그리고 그 부근이 통제 구역으로 거주인구도 거의 없었다.



그 다음날 하루가 일정이 남아서  벨기에인이 건설하여 운영한다는 골프장을 가서 골프를 하였다.  잔디가 우리나라 종류하고는 전혀 달랐다. 잔디라기 보다는 둥근 잎을 가진 열대 잡초에 가까웠다.  그리고 연못에 사람들이 들어 가 있었다. 그리고 그 들을 크록 즉 악어라고 현지에서 불렀다. 후진국이라서 물자가 귀하기 때문에 골퍼들이 라운드를 하다가 공이 연못에 빠지면 즉석에서 건져서 일달러를 받고 다시 판다.  그런데 그들에게 일달러는 무지 큰 돈이기 때문에 연못 옆에서 공 빠지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햇빛은 따가웠지만 날씨가 습하지는 않기 때문에 골프를 하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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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고에서 돌아 오는 비행기편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오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북쪽을 지나 사하라 사막을 가로 질러 파리를 간 후 거기에서 비행기를 갈아 타고 우리나라로 돌아 오는 것이었다.  어스름하게나마 하늘에서 사하라 사막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 지나간다는 것에 만족을 하였다.  파리에 도착해서는 갈아타기 전에 7시간이 비어서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가서 에펠탑 앞을 다녀 왔다. 6년만의 보는 파리의 모습은 전의 기억 그대로 였다.  그러고 보니 갈 때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로 가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다시 시베리아를 돌아 우리나라로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삼각 모양으로 일주를 한 것이었다.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내전이 진행되는 것은 민족적 동질성이 없는 것과 국토가 넓기 때문에 소위 변방까지 중앙 권력이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콩고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를 유럽국가들이 분할을 할 때 대륙 한 가운데 부분을 벨기에 왕자가 탐험가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기득권을 인정받아 지배한 것이다. 공용어는 불어를 사용하나 원래 토속어는 지방마다 다른 언어인 것이다. 즉 벨기에가 지배하는 동안 하나의 국가가 된 것이지 서로 동질성이 없는 곳이다. 거기에다 주변의 국가들의 내전에도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즉 동편에 인접한 부른디에서 민족 분쟁이 생기면 그 반군들이 콩고로 넘어와 콩고 정부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도 일종의 부족들 간에 타협으로 연정에 가깝다.  그래서 대통령은 하나지만 부통령은 상당히 다수가 있다.  그러나 수도 킨샤사 부근과 잉가댐 부근인 콩고 강 하류쪽은 중앙권력이 힘을 잡아 비교적 치안이 안정스러운 편이다.

 
한국에 돌아 와서 위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안을 알아 보았다.  그런데 콩고의 자원을 확보하고 기후 협약에 대비해 액화수소를 생산할 경우 혜택이 많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지만 그 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서로 주저하였다.  물론 콩고의 정치적 상황이 불안하기 때문에 우리가 총대를 메더라도 30%정도만 투자하고 미국과 유럽 여러 국가의 공동 컨소시움의 형태로 일을 진행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그 공사자금이  최소 8조원 정도로 추산되었는데 우리가 30%를 투자한다 하더라도 2조4천억 이상의 큰 프로젝트였다.  주위에서 이 정도면 예전에 정주영 회장이나 아니면 대우의 김우중 회장 정도가 되어야 나서서 해 보지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프로젝트를 10년 이상을 보고 장기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사견으로 한 이야기인데 아프리카의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나섰다가 실제 실행이 되면 아프리카에 홀로 가는 귀양 신세가 될 것이라서 싫어 할 것이라는 것이다.  즉 선진국이나 선진국은 아니더라도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곳은 가족들하고 같이 가기를 원하나 아프리카에 가족들을 데리고 가기를 원할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삼협댐 수력발전 2배의 세계 최대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보고 아프리카의 자원을 확보해 보자고 나선 나의 꿈은 6개월 정도 진행해 보다가 보류를 하였다. 최근에 중국이 삼협댐을 건설한 경험을 가지고 그랜드 잉가 댐의 건설에 관심을 가진 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지금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2008년 12월에 수자원공사가 콩고 남부 지역에 댐을 건설하는 데에 협력을 하고 그 대가를 광물로 받아 오기로 하는 가계약을 콩고의 현지 광산회사와 체결하였다는 것이 보도된 적이 있다.  그 당시 방문이 인연이 되서 진행이 된 것인지  아니면 그 후의 추가적인 접촉이 인연이 된 것이든 그러한 협력 사업이 잘 진행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