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서구의 경제력이 오래 전부터 동양에 앞서 있었다는 오해를 하기가 쉽다. 그러나 사실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인류의 문명은 문자의 발명과 관련이 깊은데 가장 오래된 문자는 지금 이라크 지역에서 진흙에 세겨진 설형문자로서 약 5000년 정도 되었고, 최근 중국에서 발견된 갑골문자도 약 4500년 정도로 추산된다.
문명의 큰 흐름을 보면 이라크 지역의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의 문명이 그리스 로마 그리고 유럽의 서양문화의 뿌리가 된 것이다. 인더스 문명의 영향은 그 갑작스러운 멸망으로 논란이 있다.
황하에서 시작한 문명이 중국 및 우리나라 일본 몽고 등의 독자적인 동양 문화로 발전하여 왔다. 중남미에도 마야, 잉카 등 독특한 문명이 존재하였으나 스페인에 의해 파괴된 후 전승이 되지 못하였다.
로마의 군사력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큰 환상을 가진다. 그러나 경제력으로 보면 중국 한나라 때부터 19세기말까지 약 2000년간 중국을 비롯한 동양권의 경제력이 GNP 기준으로 서양권보다 더 컸다는 것이 경제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여 통설로 받아 들여진다.
문자를 기록을 하기 위한 수단인 '종이' 및 전쟁의 유력 수단인 '화약'의 발명도 동양권이 빠른 것이다. 그런데 서양이 동양을 앞서는 계기가 되는 것이 '증기기관'의 발명이다.
영국에서 광산에 괴인 물을 퍼 내기 위한 용도로 착안된 증기기관은 1705년 토마스 뉴커맨이 발명하여 제임스 와트에 의해 안정된 형태로 개량되어 산업용, 증기기차, 증기선 등 운송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증기기관의 활용이 인간의 노동력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기계를 이용하여 제조를 하고 운송을 하는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산업혁명의 결과 유럽이 힘을 얻게 되어 19세기는 유럽이 세계 약소국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영국은 1842년 일어난 중국과의 전쟁인 아편전쟁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한 것이다. 이 이후 서양의 경제력이 동양의 경제력을 추월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서양이 동양을 경제력으로 앞서게 한 계기가 된 증기기관의 발명이 화석연료의 사용을 일반화하여 대기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늘리게 되었다. 지금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성을 전세계 국가가 인식하고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배출을 줄이기 위하여 코펜하겐에서 기후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다.
유럽은 1, 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겪으면서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 주게 된다. 물론 미국은 유럽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건설하여 문화적으로 보면 서양문화권을 계승한 것이다.
일본은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영국에게 일방적으로 패배를 당한 것을 보고 국가혁신을 준비하여 전반적인 국가제도와 체재를 변화하였다. 그 것이 명치(메이지)유신인 것이다. 그러한 힘으로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한국을 합병하고 나서 2차 세계대전에 미국과 맞서는 국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일본은 2차세계 전쟁 패배 후에 다시 급속히 경제를 회생하여 1960년대 후반부터 2008년까지 약 40여년동안 경제력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말을 기준으로 중국의 국가 경제생산이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2번째 경제강국이 된것이다. 아사히 신문에서 올해 초에 이에 대해 심각한 보도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의 자존심이 무너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충격을 받고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그 것은 사실상 명치유신 이후 계속 일본 정권을 잡은 집권세력이 물러난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의 글 “일본에서 민주당이 집권한 이유” 참조하기 바란다. http://blog.daum.net/shkong78/252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미국과 중국이 세계 양대 강국 G2라고 치켜 올리면서 그에 어울리는 국제적인 책임을 다 해야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적 부흥의 불씨를 지핀 사람이 “흑묘 백묘” ( 고양이가 검은색이건 흰색이건 쥐만 잡으면 된다는 뜻으로 실용주의를 표방한 말)라는 말을 남긴 등소평이다.
중국의 정치체재는 공산당 일당체재로 유지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사실상 자본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국가발전을 목표로 하여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
중국 내에도 각종 금속, 석유, 석탄 등 지하자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하여 전세계 자원시장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약 10년전부터 아프리카에 진출하여 원조를 하면서 자원을 확보하고 최근 호주의 큰 광산회사를 인수하려다가 좌절된 적도 있다.
중국의 자원에 대한 욕심은 한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는 우려를 보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장기적인 지속성장을 위한 현명한 선택인 것이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냉정히 보면 한민족이 동양역사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가 아니하다 고구려가 중국에 맞서서 싸울 때가 한민족의 힘이 가장 큰 시절일 것이다. 백제가 해상 무역강국으로 중국과도 널리 교역하고 일본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 바 있다.
그러나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우리민족은 한반도에 안주하였다. 조선왕조에 들어 와서는 유교가 국가의 중심이 되면서 소위 “소중화(小中華)”라 하여 작은 중국으로서 무(武)보다 문(文)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조선후기에 들어 와서 실학자들이 백성을 위한 경제부흥을 위한 정책에 대한 주장을 하였지만 그들이 정책을 움직일 실권이 없어 실제 정책에 반영이 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외척들의 힘이 강하여 지면서 매관매직의 결과로 백성들의 수탈이 널리 행하여 지는 뒤로 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한 사회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뒤집으려는 동학혁명도 일본과 청국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지배층에서의 개혁시도인 갑오경장 등도 실효성을 가지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일제의 통치를 받게 된 것이다.
2차세계 대전 종전 후에 우리는 외세의 힘으로 해방되어 미국과 소련의 국제적인 힘의 다툼의 결과로 남북한이 분단되고 남북한이 내전을 겪는 비극을 맞게 된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부라는 입장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이승만이 미국과의 협상에 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니더라도 국제정치 역학상 미국이 우리나라에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승만은 국력을 키우고 국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비젼을 가지고 못하였다.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사업을 사회주의 국가나 하는 것이라고 배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독단적으로 자신이 종신 대통령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최빈국의 하나로 경제적 희망이 안 보이는 국가였다.
그 고리를 깨고 수출을 통한 국가경제발전이라는 경제혁명을 일으킨 영웅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 잘못이 있었지만 그가 시작한 불씨가 지금까지 계속 타면서 우리나라를 선진국 문턱으로 오게 한 것이다.
그런데 유의할 것은 중국의 등소평이 국가 경제발전계획을 세우면서 박정희의 정책을 연구하여 자기 나라에 맞게 도입하려 한 것이다. 수년전에 박근혜의원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국빈 대접을 받은 것은 박근혜의원의 국내 정치에서의 위상보다 중국이 존경하고 배웠던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이 더 큰 이유였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의 대통령 5인들도 다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일부는 국가의 안정과 경제성장을 더 중시하고 다른 대통령들은 민주주의의 확립과 국민의 화합을 위하여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박대통령 이후로는 정부의 역할 못지 아니하게 민간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국가경제를 성장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2년전 대다수 국민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선진국으로 들어가기를 바라였기 때문이다.. 즉 747공약을 국민들이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아니하였지만 기업경영의 경험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국민과 소통하여 화합을 이루면서 힘을 모아 선진국의 길에 더 가까이 갈 것을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이 2년이 다 지나가는 시점에서 중간평가를 하여 보자. 보수진영에서 볼 때 대북 강경정책과 지나치게 강경인 노조에 대한 견제를 하려 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국민과의 소통이나 화합면에서는 낙제점이다. 세종시, 4대강사업으로 여론의 분란을 일으켜 국민의 갈등이 어느 때보다 심하다.
더구나 지금 가장 우선하여 추진하고 있는 국책사업인 사대강사업은 총체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수자원 정비를 위한 사업으로 표방하지만 그 속 내용은 선거공약에 내세웠던 “4대강대운하”의 전초사업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운하는 경제성이 없는 애물단지가 될 운명의 사업이다.
자세한 것은 이 블로그의 글 “4대강사업의 총체적인 문제점과 그 해결책인 대안”의 글을 참조하기 바란다. http://blog.daum.net/shkong78/476
중국이 장기적인 국가발전을 위해 세계 자원을 긁어 모으는 블랙홀을 하는 동안에 우리나라는 4대강에 운하를 파기 위해 모래를 긁어 모으는 데 전력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는 모래의 블랙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박정희 대통령 이후 약 50년동안 꾸준하게 노력하였던 경제발전의 시계를 꺼꾸로 돌리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토도 작고 내부 자원이 없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비젼처럼 해외에 수출을 하거나 해외자원기지를 확보하여 무역을 하는 개방적인 경제로서 성장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3면이 바다라서 외국과의 물류연결이 쉬운 것이 제일 큰 장점인 나라에서 한 사람의 독단으로 경제성없는 국내운하 건설에 국가재정이 올인되고 있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먼저 문제를 심각히 지적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원칙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국가 예산 나누어 먹기로 대통령의 잘못된 4대강사업을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언론도 지금 4대강사업에 간헐적인 비판으로 변죽만 올리고 있지 일부 진보 언론을 제외하고는 정면으로 반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시계를 다시 이승만 대통령 시절인 50년 전으로 돌릴 것인가에 대해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심각하게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공통점이 많다. 대다수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생각이 우매한 국민들의 의견보다 옳다는 제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장기적인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제대로 된 비젼을 가지고 있지 못한것도 공통점이다. 한 사람은 정부의 역할 없이 국민이 알아서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만의 독단에 빠져 경제성이 없는 사업을 고집하고 있다.
그리고 주위에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단순히 예스맨으로 거수기 노릇을 할 사람들만 정부와 국회에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4대강예산이 국회에서 통과하기 직전의 중요한 시점이다. 정치권은 국가의 미래라는 큰 그림을 못 보고 자기 정치적인 이익만을 보지만 대다수 양식 있는 국민들은 정확한 상황을 다 보고 있다.
만약 국회에서 4대강예산이 원안 그대로에 가깝게 통과되어 운하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경우 국민들의 분노는 어떻게 막으려고 할 것인가. 뒤늦게 라도 정치권의 뼈를 깎는 듯한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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