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견

박대통령이 근혜에게 주시는 말씀

공석환 2010. 4. 22. 07:04

어느 덧 내가 세상을 뜬 것이 30년이 넘는 구나.

 

그러나 나는 내 인생에 대해 큰 후회가 없단다.

 

네가 잘 알다시피, 네 할아버지는 양반이면서도 동학운동에 참여하셨다가 고생을 하셨지.

 

할아버지가 동학에 참여하신 것은 불의를 참지 못하고 나라를 제대로 만드는 길에 작은 노력이나마 보태시려는 것이었다.

 

아빠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 왔다.

 

대구사범을 들어가서도 나는 우리 민족의 주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였다.

 

내가 대구사범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만주군사학교에 들어가게 된 것도 일본 교사로부터 조센징이라고 멸시받는 행동을 받고 무엇인가 힘을 기르겠다는 큰 뜻이 있어서이다.

 

만주군사학교에 들어갈 때 내 나이가 이미 다른 생도들보다 더 많았지만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나는 만주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국제정치는 힘의 정치라는 것, 즉 일본놈들이 과거 더 문화가 발달하여 전수받았던 중국사람들을 개패듯 사람대접하지 아니하는 것을 보면서 국내에 있었을 때의 우리 민족의  현실을 보게 되었다.

 

즉 한민족이 배고프고 서럽지 아니하자고 그러면 경제적인 힘과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군사력 및 국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만주에서 체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아니하였다. 일본 패망후 나는 조국에 돌아 와서 한국군에 편입된 선배들과 같이 하게 되었다.

 

자유당 정권하에서 나는 정치인들의 더러움을 많이 보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의식이 뚜렷한 분이었다. 그 분의 영도로 우리가 한국전쟁을 이겼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분은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였다. 어쩌면 본인의 자존심이 너무 강하여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아부하는 사람만을 편애한지도 모른다. 마도로스 출신으로 울보 장관이라고 불리운 신성모 국방장관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나도 자유당 정권의 실세라는 놈들 때문에 고생 좀 하였다. 한 놈 때문에 장성 진급과정에서 탈락할 뻔 하다가 나를 아끼는 선배들 덕으로 간신히 모면하였다. 나중에 손을 보아줬지.

 

한국전쟁이 끝나고 자유당 정권을 보면서 나는 내가 왜 이런 세상에 안주하여야 하는 가 하는 비판의식을 더욱 가지게 되었다.

 

선거는 막걸리로 표를 매수하고 그 것도 안되면 개표함을 바뀌치고, 정적으로 강하다 보면 조봉암이처럼 모함으로 잡아들여 죽이고 미국에서 나오는  구호 물자를 가지는 이권을 나누어 먹기 위한 이전투구는 가관이었다.

 

나는 군선배들과 술 한잔 하면서 이러한 자유당 정권의 썩은 정치인 아래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나라를 개혁하고 힘을 기른 것처럼 우리도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연로하면서 국정은 아래 것들에게 맡겨 놑으시고 국민의 실상은 잘 모르셨지. 결국은 3.15부정선거 이후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세상이 바뀌었지.

 

그런데 민주당 정부에 앉은 놈들을 보니, 말만 이승만 대통령에게 대적한다고 야당으로 행세하였지 지네들끼리 다시 이권 다툼만 하고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5.16혁명을 일으킨 것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한 것이다. 실패하면 당연히 반란수괴로 내 목숨이 날라갈 것을 각오한 것이다.

 

내가 정권을 잡고도 내 뜻을 펼치는 것은 쉽지 아니하였다. 네 큰 아버지의 남로당 경력과 나도 우연히 몇번 만나 이야기를 들은 과거 때문에 미국은 나를 좌익분좌라는 편견을 가지고 보았다.

 

나의 가장 큰 은인은 독일이다. 같은 분단국가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여 주고 일본과 화합하여 협력할 것을 권하여 준 것도 나에게는 나라의 상황을 바꿀 전기가 되었다.

 

사실 국내 정치 항상 힘들었다. 김영삼이 김대중이 아무 것도 잘 모르는 놈들이 항상 선동만 하고 김종필이 이 놈은 뒤에서 내 후계자라고 내 세우면서 지 세력만을 만들고 .

 

내가 정치를 하면서 믿을 놈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말로만 국가와 민족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뒤로는 자기 주머니 챙기기 바빴지. 김형욱이도 외국에 도망가면서 엄청난 돈을 가져갔었지.

 

그래도 내 후계자로 한 놈을 양성하지 못한 것은 후회가 된다. 아마 박태준이가 그 중 가장 나았을 것 같은 생각도 하고.

 

더구나 문세광이의 어처구니 없는 총알에 네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어려울 때마다 내 옆에서 같이 하여주던 기둥을 잃은 것이 되었다.

 

그 후 좀 내가 처신에 조심하지 못한 것이 있던 것 같다. 그러다 내가 믿던 김재규에게 배반을 당한 것은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에 후회를 하지 아니한다. 비록 내가 사소한 잘못은 하였어도 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력하였다는 것을 부끄럽지 아니하게 말할 수 있다.

 

근혜 네가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너는 서강대 전자공학과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심지도 굳어서 단순한 맏딸이 아니라 그 이상의 보배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네가 세상의 험한 꼴을 겪어 보지 아니하여 남을 너무 잘 믿고 너를 이용하려는 놈의 수작에 넘어가는 적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최태민이 그 놈은 아예 내가 저승에 보내었어야 하는데 그러고 나면 야당이 더 정략적으로 이용한다고 하여 참은 것이 후회가 된다.

 

네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치를 한다는 것에 아빠는 반대가 없다. 다만 아빠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너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간사한 말을 믿지 말아라. 그리고 당장 너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국가와 민족의 먼 장래를 보고 행동을 하여라.  그러면 국민들은 너를 믿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아빠가 미처 마치지 못한  일을 마무리 하여라. 즉 북한하고  평화적으로 통일하면서 뒤에 부패하는 놈들 다 없에고 한민족이 하나로 뭉치는 정치를 하여라.

 

사실 아빠가 지금 하늘에 있어도 다 보고 있는데 걱정이 하나 있다. 박세게  생긴 놈이 너를 이용하여 강바닥 모래 파면서 뒤로 돈을 챙기려 하고 있다.  너 그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기 바란다.

 

단순히 너 뿐 아닌 나의 명예도 더럽혀질 수 있다. 이 것이 아빠가 지금 너에게 줄 최선의 말이다.

 

나중에라도 네가 꼭 필요할 때 나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면서 너를 사랑하는 아빠로서 다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