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유식·베이징 특파원
호랑이해의 첫날인 1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는 새벽부터 1만5000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새해 첫날의 국기(國旗) 게양식을 보기 위한 행렬이었다. 오전 7시 36분, 의용군행진곡(중국 국가)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오성홍기(五星紅旗)가 게양대 위로 치솟아 올랐다. 군악대 반주에 맞춰 국가를 부르던 인파는 국기가 끝까지 오르자 우레같은 박수로 2010년대의 개막을 환영했다. 영하 10도의 차가운 날씨를 녹이고도 남을 열기였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새해 첫날의 국기 게양식이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인파가 많았고, 분위기도 한껏 달아올랐다.
이에 앞서 12월 31일 밤에는 상하이 와이탄(外灘)에서 120일 앞으로 다가온 상하이 엑스포를 기념하는 성대한 축하 공연이 펼쳐졌다. 자정이 다가오면서 푸둥(浦東) 지구의 고층빌딩 숲 위로는 화려한 불꽃이 수를 놓았다.
2010년 신년을 맞은 중국은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2009년은 중국의 개혁·개방 30년 중 가장 어려운 한 해였다. 티베트(西藏) 봉기 50주년, 톈안먼사태 20주년 등 갖가지 악재가 겹쳤다. 지난해 7월에는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에서 소수민족 폭력사태가 발생해 1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고도 성장을 이어오던 경제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추락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한 해를 무사히 넘겼을 뿐만 아니라, 이 위기를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데 성공했다.
중국 최고지도부의 신년 일성(一聲)은 '글로벌 체제 변화'였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신년사에서 "세계는 지금 대발전·대변혁·대조정의 시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양제츠 외교부장도 공산당 기관지 '치우스(求是)' 기고문에서 "세계는 체제 변화와 질서 조정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달라진 국가적 위상을 바탕으로 세계 질서를 바꿔나가겠다는 웅대한 포부가 담긴 발언들이었다.
일반 국민의 시각도 비슷하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가 베이징· 상하이·광저우 등 중국의 5개 주요도시 시민 1350명을 대상으로 벌인 '중국인의 세계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의 74%가 중국이 이미 글로벌 강대국이거나 그에 근접했다고 대답했다. 특히 군사·문화 분야보다는 경제와 정치·외교 측면에서 강대국의 조건을 갖췄다는 응답이 많았다.
중국의 위상이 올라갈수록 한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중국측 인사들과 접촉이 잦은 베이징의 한국 외교관들은 최근 1~2년 사이 우리의 위상 추락을 실감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제개발의 스승' 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배울 것 없는 그렇고 그런 나라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중국의 주변국 관계 중 가장 중요한 나라가 어디냐'는 이번 조사의 질문에서도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는 러시아와 일본·인도·동남아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일본·러시아에 이어 3위였지만 올해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에 밀렸다.
한국은 지난 2008년 대중 무역 규모가 1861억 달러로 중국의 주변국 중 일본(2268억 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또 중국의 4대 무역국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우리를 보는 중국의 시선은 예전 같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의 류우익 신임 주중대사를 임명한 것도 이런 상황을 절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강대해진 중국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2010년 새해,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이다